며칠 지나면 올해의 추석(秋夕) 한가위다. 추석은 둥근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는 음력(陰曆) 8월 15일이다. 그래서 추석을 가을의 「한 가운데」라는 뜻으로 「한가위」라 한다. 한자로는 또 가을의 가운데라는 뜻의 중추절(仲秋節)로도 부른다.

우리의 일상에서 달력과 날짜는 매우 중요하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는 날짜도 알아야 하고, 또 사랑하는 연인의 생일이나 심지어 만난 지 100일째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집안의 제사나 여러 행사도 알아야 하며 농부는 씨뿌리고 파종하는 날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어부는 언제 밀물과 썰물이 들고나는지 그 변화를 알아야 배를 바다에 띄울 수 있다.

달력이나 시계도 없었던 고대 우리 인류는 날짜와 시간 그리고 때의 변화를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과 내일이야 밝은 해가 서산에 지고 밤이 되었다가 다시 해가 뜨면 다음 날 내일이니 쉽게 알 수 있었을 테지만, 글자가 없었거나 또는 글을 잘 몰랐던 고대에는 내년 이맘 때, 또 한 달 후....이런 때를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하루의 변화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太陽)을 보고 아침, 점심, 저녁, 밤을 알 수 있지만 날짜의 변화는 이 태양으로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태양은 늘 같은 모습으로 아침에 동쪽에서 떴다가 저녁이 되면 서쪽으로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가 지고 난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그 모양이 달랐다. 오늘의 달 모양이 다르고 또 내일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눈썹모양이 금방 반달 모양이 되고 또 둥근 보름달 모양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인류는 밤하늘의 달을 보며, 이 달이 작아졌다가 또 커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둥근 보름달이 작아졌다가 다시 둥근 보름달이 되는 기간(其間)을 『한 달』로 삼았다. 이 한 달은 달이 한번 커지고 작아져 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기간을 말한다. 보름달이 다음 보름달이 되고 또 초하루(그믐)가 또 다음의 초하루(그믐)가 되는 이 기간을 우리는 『한 달』 즉 「삭망월(朔望月, 초하루삭 보름망)」이라 부른다.

그 옛날 사랑하는 연인은, 보름달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다가 다음에 만날 날을 또 기약한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니 또 다음 보름달을 기약할 수밖에.....

“영희야! 다음 보름달이 뜨면 다시 여기 물레방아간 뒤에서 또 만나자꾸나.....잘 있어......” 아쉬워하면서 이렇게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동안 이 달을 보며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면서 대대손손 살아왔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둥근 달에게 빌고 빌었다. 달은 소원(所願)을 달래주고 해결해주는 우리의 이상향(理想鄕)인 셈이다. 달에는 지금도 아름다운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으며 살고 있다.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알 듯 모를 듯한 주문을 외면서 말이다.

이렇게 달의 변화를 기준으로 만든 달력이 음력(陰曆) 즉 태음력(太陰曆)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이 음력을 기준으로 살아왔기에 거의 모든 문화(文化)가 이 음력에 맞추어져 있다. 추석이 그러하고 설날이 그러하며 또 생일과 제사, 정월 대보름이 그러하다.

이렇게 밤하늘의 달을 기준으로 사용하던 달력(음력)을 한낮의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달력(양력)으로 바꾼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조선이 근대화를 맞은 갑오개혁(甲午改革)의 이듬해인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삼았다. 그러니까 양력기준으로 1896년 1월 1일부터 우리나라는 양력(陽曆)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고작 115년 된 셈이다.

☞고종 32년, 【음력 1895. 11. 17】 = 【양력 1896. 1. 1】

물론 음력을 사용하던 오래 세월동안 양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울기로 한 달의 기간만 나타낼 뿐 때와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기 어려워 농사일에는 불편함이 많아 계절을 나타내는 태양의 변화를 달력에 적용한 것이 바로 절기(節氣)다. 입춘(立春)과 하지(夏至), 동지(冬至) 등이 그것인데 이 절기로서 계절의 변화를 농사일에 적용했던 것이다.

지금 세간의 모습은 깜깜한 밤과 같이 어둡고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무상복지니 포퓰리즘이니 선택적이니 보편적이니 또 진보니 개혁이니 보수니 등의 온갖 말들이 어둠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어둠을 보름달같이 밝혀 보겠노라고 나서는 분들이 여기 저기서 출사표를 던지기도 하고 또 몸을 숨긴 용(龍)처럼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그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출마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깜깜하고 혼란스런 어두운 정국을 밝혀줄 보름달은 언제 뜰까? 그리고 그 보름달은 과연 우리의 소원을 빌어줄 그런 보름달이 될 수 있을까? 추석이 기다려지고 또 밝은 보름달이 보고 싶어진다.
<문화칼럼, 地山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