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가 저문다.
퇴근 무렵 골목길에 휘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처럼 세밑 경기가 차갑지만 그래도 설을 기다리는 마음은 훈훈하기만 하다. 설날 제수를 준비하는 주부들이 손길에서 고향 떠난 자식들을 그리는 마음이 따스하게 묻어난다.

이제 며칠 후면 섣달그믐과 또 새 설날이 다가온다. 늘 반복되는 오늘과 내일이지만 새해라고 이름 붙인 설날은 설레고 또 기다려진다. 아마 어릴 때 설날에 입던 새 설빔의 그 기분 탓이리라. 어릴 때에는 추석과 설날에만 새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 만큼 집안 살림이 풍족하지 못하고 또 형제가 많은 탓이었다. 설날 새로 산 옷을 입고 이른 새벽 희미한 골목길을 다니며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하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인 섣달 그믐날에는 일년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과 또 여러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하는 풍속이 있었다. 설날의 세배에 앞서 하는 세배라 하여 『묵은 세배-구세배舊歲拜)』라 하였다. 오늘날 이 묵은 세배는 통신의 발달로 이동전화가 문자로 대신하여 몇 십 통씩 받고 보내기에 바쁘다.

그리고 섣달그믐 전날부터 동네 어귀에서는 축포와 대포를 쏘면서 한 해를 보내기도 하였는데, 이 폭죽놀이는 설날 아침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이 또 가세하면서 온통 뻥 뻥 소리를 내어 어른들을 놀래키기도 한다. 이러한 폭죽놀이는 전염병이나 나쁜 악귀를 큰 소리로 놀라게 해서 쫓아내는 놀이와 행사였는데 최근 중국에서는 불량 폭죽으로 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섣달 그믐날 밤에는 집집마다 마루나 방 그리고 부엌 등에 불을 환하게 밝혀두고 밤새도록 자지 않았다. 심지어 외양간이나 변소에까지 불을 밝혀 두었다. 또 밤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하얗게 센다고 하여 어린아이들은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어 아침을 맞곤 했는데, 이때 어른들은 아이의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발라 놀려주기도 했다. 어른들은 또 이날 밤 밤새도록 오락인지 도박인지 모를 화투놀이(이를 세투歲鬪라 한다)를 하면서 뜬눈을 새기도 한다.

새해 첫날 원일(元日)이 되면 이른 아침 어른들께 문안인사인 세배(歲拜)를 드리고 또 차례(茶禮)를 지낸다. 꽁꽁 언 새벽의 날씨는 춥지만 새로 신은 신발과 옷 때문인지 추운 줄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은 쌓이는 세뱃돈을 세며 신이 나고, 세배를 받은 어른은 덕담(德談)은 건넨다.

설날 아침에는 흰쌀로 가래떡을 만들어 동전모양으로 둥글게 쓴 떡국을 먹는다. 새해 아침에 먹는 떡국이기에 이 떡국을 몇 그릇 먹었는가에 따라 나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떡국의 그릇 수와 나이는 같다. “너 떡국 몇 그릇 먹었어?”라는 말이 곧 “너 올해 나이가 몇이야?”와 같은 말이다.'

새해 정월에는 또 대궐이나 가정집의 대문에 귀신상(귀신머리 모양)을 그려서 붙이기도 하고,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붙이기도 하였는데, 모두 나쁜 액(厄)이나 질병을 물리쳐 한 해의 무사태평(無事泰平)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새 해에 삼재(三災)가 든 사람은 삼재풀이를 하기도 하고, 집안에서는 매 세 마리를 그려서 문 위에 붙여 삼재를 몰아내기도 하였다.

삼재(三災)란 해마다 세 띠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3년 동안 나쁜 운에 드는 것으로서 이 삼재기간에는 결혼이나 개업 등 큰 일에 신중하고 또 남의 일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몸가짐에 조심해야 큰 화를 면할 수 있다. 올해 2012년 임진(壬辰)년의 경우 원숭이띠(잔나비), 쥐띠, 용띠가 삼재에 해당한다.
<→삼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또 정월에는 남자들이나 가족끼리 윷놀이를 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널뛰기를 하기도 한다. 윷놀이는 반으로 자른 나무토막 네 개의 윷을 던져 29개의 점이 찍힌 윷판에 네 개의 말을 놓으면서 노는 놀이인데, 윷이 엎어지거나 젖혀지는 모양에 따라 「도.개.걸.윷.모」로서 말을 그 칸 수 만큼 옮겨 내기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 윷놀이를 할 때에는 윷을 던져 새해의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이 윷점은 치는 방법은 윷을 세 번 던져서 주역의 육십사괘(64괘)를 얻어 점괘를 풀이한다. 예를 들어 윷을 세 번 던져 「걸․걸․도」가 나왔다면 이는 위에 물(☵)이 있고 아래에 하늘(☰)이 있는 수천수(水天需)괘가 된다. 물이 하늘 위 멀리 있으니 물에 배를 띄우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지 않음을 뜻한다. 즉 시기와 때를 기다리면 좋은 기회가 다가옴을 의미한다. 윷점으로 이 「수(需)」괘를 얻었다면 그 이 점괘(요사繇辭)는 ‘어변성룡(魚變成龍’)으로 ‘물고기가 변하여 용(龍)이 된다’는 운수이다.

세월이 변하면서 정겨운 풍경이나 여러풍속도 많이 없어지고 변했다. 올 설날에는 가족끼리 모여 고스톱 화투나 컴퓨터 게임 대신 윷판을 한 판 벌여 정겨운 소통의 장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또 올해는 개천에서 태어난 물고기도 용(龍)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큰 선거가 있는 해이니 관심도 가져보는 기회도 만들면 좋겠다.

먼 고향길 안전하게 다녀오시고, 또 임진(壬辰)년 새해에는 운수대통(運數大通)하시길 빕니다.


<문화칼럼, 地山 識>